인도영화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두 가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폭발하는 액션이거나, 군중이 함께 추는 현란한 군무. 그런데 청원(Guzaarish, 2010)은 그 어느 쪽도 아니다. 처음 제목을 검색했을 때 나온 키워드가 '안락사', '전신마비', '법정 드라마'였는데, 솔직히 잠깐 손이 멈췄다. 보기 전부터 마음이 무거워지는 영화들이 있다. 그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됐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는 영화들.
이 영화를 알게 된 건 꽤 오래전 일이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 나이 지긋하신 선배가 있었는데, 어느 날 점심 자리에서 느닷없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야, 인도 영화 중에 진짜 좋은 거 하나 있는데 꼭 봐라. 마술사 얘기야." 그게 전부였다. 제목도 안 알려주셨다. 그 대화를 잊고 살다가 몇 해가 지나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추천 알고리즘에 떠오른 예고편을 보고서야 '아, 그게 이거구나' 싶었다.
예고편에서 딱 한 장면이 마음에 걸렸다. 화면 가득 채우는 화려한 마술 공연, 조명, 함성. 그 다음 컷에서 똑같은 얼굴의 남자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 30초짜리 예고편을 멈추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무언가 이상하게 콕 찔리는 느낌이었다. 며칠 전에 뉴스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척수를 다쳐 전신마비가 된 30대 남성 얘기를 봤던 탓인지도 모른다. '저 사람이라면 어떤 기분일까'가 아니라,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질문이 불쑥 튀어나왔고, 그 상상이 너무 끔찍해서 바로 접어버렸다. 그래서였을까. 영화를 선뜻 틀지 못하고 한 주를 더 미뤘다.
결국 어느 일요일 오후, 커튼을 반쯤 내리고 혼자 앉아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126분 뒤,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단순히 슬퍼서가 아니라, 머릿속에 뭔가가 계속 맴돌고 있어서였다.
영화 정보
제목 : 청원 (Guzaarish)
개봉 : 2010년 (인도) / 2011년 (한국)
감독 : 산제이 릴라 반살리
주연 : 리틱 로샨, 아이쉬와라 라이
장르 : 드라마 / 법정 / 멜로
주제 :안락사 (존엄사), 삶의 의지와 선택
피아노 선 하나로 무너진 세계
이튼 마스카렌하스(리틱 로샨)는 세계 최고 마술사에게 주어지는 '멀린' 칭호를 받은 사람이다. 그가 무대에 오르면 객석이 들썩였다. 공중부양, 신체절단 마술, 화려한 조명과 함성. 그런데 어느 날 공연 도중, 경쟁자가 그가 공중에 떠 있던 피아노 선을 끊어버린다. 이튼은 추락하고 경추가 골절된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전신마비 환자가 된다.
그로부터 14년이 흘렀다. 이튼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라디오 DJ가 됐고 자서전을 냈다.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된다. 그런데 바로 그 이튼이 인도 법원에 안락사를 허락해달라는 청원을 낸다. 희망의 아이콘이 스스로의 죽음을 요청한 것이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왜 죽고 싶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이튼은 14년을 버텼다. 그리고 그 14년 끝에 내린 결론이 이 청원이다.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오랜 시간을 살아낸 사람이 마침내 도달한 결단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튼이 자신을 사지마비로 만든 경쟁자의 아들에게 마술 비법을 전수해주는 장면이다. 그 아들인 걸 알면서도 기꺼이 가르쳐준다. 복수도 아니고 용서의 연설도 없다. 그냥 묵묵히 전수한다. 이 장면 하나에서 이튼이 어떤 사람인지가 다 보인다. 원망을 넘어선 사람, 이미 다른 차원의 평화에 닿은 사람. 리틱 로샨은 몸 하나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제약 속에서, 눈빛과 입 꼬리의 미세한 움직임만으로 그 14년치의 감정을 담아낸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 질문은 영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미디어에서 이런 류의 사람들을 가끔 접할 때마다 잠깐 그 질문을 던지고 금세 다른 생각으로 넘어갔는데, 이 영화는 그 질문을 126분 동안 놓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상상하면 할수록 끔찍했다. 그 끔찍함 자체가 이 영화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다는 걸, 다 보고 나서야 알았다.
반살리의 빛, 소피아라는 존재
감독 산제이 릴라 반살리는 '블랙(2005)'으로 이미 장애를 다루는 방식이 남다른 감독이라는 걸 증명한 사람이다. 청원에서도 그 감각은 그대로다. 이 영화에는 발리우드 특유의 현란한 군무나 폭발하는 액션이 없다. 대신 공간, 빛, 색채, 음악으로 감정을 쌓아 올리는 반살리식 연출이 가득하다.
이튼이 14년 동안 누워 지내는 저택은 포르투갈풍 건물이다. 인도 고아주를 배경으로 한 이 공간은 아름답고 고요하다. 창문 너머로 바람이 지나가고, 빗소리가 들려오고, 커튼이 흔들린다. 이튼은 그 모든 걸 볼 수는 있지만 느낄 수 없다. 반살리는 이 감각의 단절을 화면 가득 펼쳐 보이면서, 말보다 훨씬 더 깊이 이튼의 상실을 전달한다.
영화 속 음악은 올드 팝과 인도 선율이 절묘하게 섞인다. 특히 이튼의 마술 시절 회상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현재의 고요한 침실 장면이 교차할 때의 낙차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OST로 Anne Murray의 'What a Wonderful World'가 흐르는 장면이 있는데, 그 아이러니가 가슴을 두드린다. 그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그는 이제 몸으로 느낄 수 없으니까.
아이쉬와라 라이가 연기하는 간호사 소피아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축이다. 그녀는 12년간 이튼의 곁을 지켰다. 남편과의 불화도 감수하면서. 이튼이 청원을 내는 순간 소피아는 배신감을 느낀다. 그 배신감이 사실은 얼마나 깊은 사랑의 다른 면이었는지, 영화는 천천히 보여준다. 시나리오도 읽지 않고 출연을 결정했다는 아이쉬와라 라이의 선택이 이해되는 이유가 있다. 이 역할은 미모와 감정 깊이가 동시에 요구되는 자리인데, 그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진 배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청원이 기각된 뒤, 이튼은 스스로 마지막을 준비한다. 소피아와 결혼하고, 하녀들, 변호사, 의사, 마술을 전수한 젊은이, 성당 신부와 함께 마지막 파티를 연다. 이 장면이 놀라운 이유는, 이튼이 끝까지 위트를 잃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웃으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발리우드 영화 특유의 감정 과잉 없이, 조용하고 따뜻하게. 그 장면에서 나는 영화 내내 참았던 뭔가가 터지는 걸 느꼈다.
이 영화는 안락사 찬성이나 반대를 설파하지 않는다. 그 대신 '죽음을 선택하는 인간'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그 얼굴이 생각보다 훨씬 평화롭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청원(Guzaarish)은 무거운 영화다. 하지만 짓누르는 무게가 아니라, 오래 남는 무게다. 이튼이 선택한 것이 옳은지 그른지, 영화는 끝내 판단하지 않는다. 그 판단을 관객에게 돌려준다. 그리고 그 판단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이 영화는 비로소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 시간쯤 뒤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튼이라면, 나는 14년을 버텼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그리고 그 '모르겠다'는 감각이, 이 영화가 내게 남긴 가장 진짜 감상이다. 답 없는 질문을 안고 살게 만드는 영화. 그런 영화가 진짜 좋은 영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사람
- 발리우드 영화의 화려함이 아닌 깊이를 처음 경험하고 싶은 분
- 삶의 의지, 존엄사, 선택의 권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있는 분
- 리틱 로샨이 단순한 액션 스타가 아닌 연기자임을 확인하고 싶은 분
-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의 시각적 미학을 좋아하는 분
- 감정을 억지로 쥐어짜지 않는, 조용히 스며드는 드라마를 원하는 분